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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야시카 일렉트로 35 GSN - 첫 롤 (코닥 골드200 / 망우삼림)

내 눈에는 너무 예쁜 야시카.

카메라를 살 때 번개장터에서 나름대로 신뢰가 가보이는 분(=후기가 좋은 분) 매물 중에서도 사진 상에서 상태가 깨끗해보이는 친구를 엄선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렌즈와 뷰파인더에 곰팡이나 먼지가 많이 껴있지 않은지에 중점을 두었고. 또 배터리체크 기능이 잘 작동하는지도 문의를 통해 확인했다. 아무래도 핸드폰이 아닌 첫 카메라 그것도 오로지 빈티지의 세계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필름카메라를 구매하다보니 지식도 경험도 없는 초심자로서 상당히 신중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튼 여차저차해서 구매를 결정하고 받아본 카메라 상태는 외견 상 괜찮았다. 렌즈필터, 렌즈캡, 스트랩, 케이스까지 동봉된 풀세트였던 점도 좋았다.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일렉트로 35 특히 GSN이나 GTN 모델이 크고 무거워서 벽돌이라고 많이 놀림받던데, 물론 실제로도 무게가 가볍지는 않지만 내 체감으로는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기엔 무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들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적절한 가격 수준에 무난한 첫 구매라고 생각해서 만족.

 

나는 특히 상단부에서 보이는 작고 섬세한 글씨들이 참 좋다.

하지만 카메라는 장식품이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 아닌가. 이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백날 깨끗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구매하고 함께 미리 주문해둔 코닥 골드200으로 부랴부랴 한 롤을 찍기 시작했다. 어디 카메라를 들고가서 찍을 수준은커녕 조작 자체가 어색하던터라, 주로 집 안에서나 출퇴근 길에 이것저것 찍어봤다. 뒤에야 알았지만 당시에 날도 계속 흐렸고, 실내로 들어오는 그런 자연광 수준으로는 초점이 정말 안보였다. 처음에는 내가 미숙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연습삼아 뷰파인더를 계속 들여다봤는데, 반대편 눈 윙크를 너무 세게 하다보니 나중에는 눈 주변 근육에 경련이 생길듯했다.

 

무튼 며칠 만에 한 롤을 다 찍고, 조심스럽게 필름을 되감아 카메라에서 꺼냈다. 현상을 어디서할까 찾아보니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는 중앙칼라, 고래사진관, 일삼오삼육, 망우삼림 등이 있었는데, 당시 현상을 맡기러 갈 수 있는 날이 일요일 뿐이라 주말내내 여는 망우삼림으로 갔다. 을지로는 4-5년 전 한창 뜰 때 많이 놀러가다가 정말 오랜만에 들렀는데, 망우삼림은 소문처럼 홍콩영화 스타일로 힙하게 꾸며져 있다. 뉴비의 첫 롤이라 스캔은 후지 스캐너 3천 원짜리 BASIC으로 맡겼다. 접수만 무려 두 분이서 받으시고, 스캐너 앞에도 두세 분이 있으신데 주말에도 정말 열일하시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맡긴 당일 저녁에 바로 결과물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음은 결과물. 먼저 실내 사진이다.

 

흐린 날의 역광이지만 빛의 질감이 잡혀서 좋다.
어두운 곳에서 초점을 맞추려니 반대편 눈을 너무 세게 찡그려 아프다.
실제로도 약간 누런 벽이지만, 코닥 골드200 탓인지 더 누래보인다.
초점에 뒤에서 맞아 아쉽고, 역시 필름 영향인지 많이 누래보여서 아쉽다.

 

이제는 실외 사진. 당시 날씨가 계속 흐렸다는건 핑계고 조리개 조절도 미숙해서 대체로 옛날 기록사진처럼 보인다.

 

약간의 빛샘이 있었다. 수많은 직선은 좋으나 구도 상 포인트가 없어서 아쉽다.
아침 햇살이 화려한 빌딩에 비치는 모습인데, 필름으로 찍으니 이질감이 든다.
아직은 내 시야에 들어온 구도를 뷰파인더로 맞추는게 어색하다.
날도 흐리고 필름으로 담으니 무너지기 직전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런 느낌까진 아니다!
아직은 출근시간 지하철역에서 사진 찍기가 부끄러워 차마 조리개를 충분히 열지 못했다.
우뚝 솟은 파란 파이프가 줬던 미적인 느낌을 사진으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보통 쓰는 필름이 36장이고, 요새 미친듯한 필름값 상승으로 골드200도 7천 원이 넘는다. 현상하는데 3천 원 이상 드니까 대충 한 장에 2-3백 원 꼴이다. 그리고 이렇게 미숙한 조작으로 초점이나 노출이 안 맞아서 건질 사진이 열 장 내외 뿐이면 한 장에 천 원이다. 무척 사치스러운 취미가 아닐 수 없다.

 

흔히 말하는 기록용 사진은 핸드폰으로 쉽게 찍고 공유하다보니, 카메라로는 더군다나 소중한 필름을 한 장씩 태워야하는 필름 카메라로는 내 나름대로 미적인 대상을 포착할 때에만 찍게된다. 그것도 카메라를 꺼내서 렌즈캡을 열고, 와인더로 필름을 감은 뒤, 뷰파인더를 보며 초점을 한참 맞춘 뒤에, 현재 날씨를 고려해서 조리개를 조절하고, 반셔터로 노출이 적절한지 점검하고, 다시 뷰파인더를 보면서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른다. 이 일련의 과정을 유려하게 하지 못하니 시간이 꽤나 걸린다. 그리고 당장 결과를 볼 수 없고 주말에 현상소에 맡긴 뒤 기다려야 한다. 더군다나 압축파일로 보내주셔서 컴퓨터를 켜야하는 번거로움까지 있다.

 

그런데 이런 불편함이, 이런 느린 과정이, 꽤 재미있다. 더 편파적이고 선동적인 정보를 갈구하고,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미지들에 잠식되는 이 세상에서 홀로 김삿갓이 된 기분이랄까. 유유자적하며 내 주변이 가진 물성과 교감하고 거기에 떨어지는 빛의 파편을 담아내는 경험에서 익숙한 새로움을 느낀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첫 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으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