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애정하는 수많은 아티스트를 제치고 Elton John(이하 엘튼 존)의 새 앨범 리뷰를 음악 첫 글로 선택했다. 그 이유는 뒤에서 차차 설명하도록 하고.

일단 엘튼 존 얘기부터 좀 해보자.
영국의 가수/작곡가, 피아니스트, 프로듀서, 사회 운동가, 사업가, 기획자, 라디오 진행자, 왓포드 FC 前 회장이자 종신 명예 회장이다.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거머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들 중 하나이자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들 중 한 명이다.
2억 장 정도의 음반 판매량, 추정치로 2억 5천만에서 3억 장에 이르는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뮤지션 4위이자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영국 솔로 뮤지션으로 집계되었다.
(출처 : 나무위키)
설명 그대로 음악적으로 엄청나게 성공한 가수이자 작곡가면서 유명인이다. 기라성 같은 업적들과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사실 나는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1973년 발매한 Goodbye Yellow Brick Road 인걸.) 솔직히 말하면 내게 각인된 엘튼 존의 이미지는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중 극악무도한 악당(줄리앤 무어 扮) 밑에서 음악노예(?) 생활을 하는 어딘가 모자란 뮤지션 역할로서다.

무튼 그를 비틀즈보다 조금 덜 유명한 가수이자, 아직도 왜 그런 역할을 맡았는지 모르겠지만 킹스맨2에 출연한 분, 그리고 예쁜 선글라스를 많이 쓰시는 것 정도로 알고 지내던 어느 날 아래 곡을 듣게 된다.
https://youtu.be/Rl_bls2X6Dg
멜론에서 신곡 서핑하는 것이 취미 중 하나인 내게, 이 곡 After All은 사실 전부터 좋아하던 찰리 푸스 때문에 듣게 된 곡이다. 처음 노래를 듣고 찰리 푸스에게 잘 어울리는 도입부와 멜로디까지는 좋았는데 2절부터 나오는 엘튼 존의 목소리는, 드러나게 이펙터를 사용한데다 찰리 푸스에 비해 딱딱 끊어지는 딕션이어서 처음엔 다소 듣기 어색했다. 그래도 2절 끝난 뒤에 잠시 나오는 바뀐 코드 전개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기법이지만) 적절하게 감정을 끌어올린 전조, 마지막으로 찰리 푸스가 하드캐리하는 둘의 하모니까지 이어지며 묘한 쾌감을 주었다. 그렇게 여러 번 듣다보니 어딘가 단순해보이는 엘튼 존의 목소리에서 깊이와 울림을 느낀 것도 같다.
참고로 찰리 푸스야 분노의 질주 OST인 See You Again으로 정말 유명하지만, 나에게는 아래 이미지가 더 강하다.
https://youtu.be/CwfoyVa980U
이렇게 After All을 일주일 정도 들었을까, 엘튼 존이 이번엔 무려 스티비 원더와 싱글을 낸다(Elton John, Stevie Wonder - Finish Line). 덧붙이자면 요즘들어 앨범을 한꺼번에 발매하지 않고 수록곡을 하나씩 싱글로 선공개하다가 나중에 몇 곡을 더해서 하나의 앨범으로 내보이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싱글 위주의 음원 시장에서 비지니스적으로 결정된 방식이리라. (나의 최애 Parcels도 몇 개월 째 그러고 있다.)
그리고 한국 날짜 기준 10월 22일, 그간 발매한 협업 싱글에 몇 곡을 더해 The Lockdown Sessions를 발매한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찰리 푸스 이전에도 다섯 곡을 미리 발매했었고 전체 앨범에는 거기에 9곡이 더 추가됐다.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원래의 나 같았으면 엘튼 존이 새 앨범을 냈다고해도 굳이 찾아서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찰리 푸스 등 젊은 아티스트를 내세워 싱글을 먼저 발매한 전략이 나에게도 먹힌 셈인데, 왠걸 뚜껑을 열어보니 굳이 이렇게 정성들여 앨범을 리뷰하게 할 요소가 충분했다.
먼저 모든 노래가 협업으로 되어있다는 것도 충분히 대단한데, 그 면면을 보면 더더욱 놀랄 수 밖에 없다. 일단 Dua Lipa, Miley Cyrus 같은 비교적 젊지만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들에다가, Young Thug과 Nicki Minaj 그리고 Lil Nas X 같은 힙합 뮤지션들은 물론이요, 전자음악 기반인 Years & Years와 SG Lewis 까지, 정말 세대를 뛰어넘어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과 음악을 만들었다.
그리고 앨범을 들어보면 단지 '엘튼 존 음악 바탕에 젊은 아티스트들이 함께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음악적 색깔에 엘튼 존이 직접 뛰어든' 것임을 알 수 있다. 가령 두아 리파와 함께한 첫 트랙 Cold Heart 같은 경우, 두아 리파가 최근에 큰 성과를 낸 신스웨이브 장르를 그대로 들고와 엘튼 존의 목소리만 적절하게 실었다. 또 일렉트로닉-하우스 뮤지션인 SG 루이스와 함께한 Orbit에서는, 루이스 스타일대로 디스코 풍 베이스에 16비트 드럼을 깔고 엘튼 존이 분위기에 맞춰 촌스럽게 노래를 하다가 훅에서는 트렌디한 현악기 소리로 메꿔진다.
https://youtu.be/qod03PVTLqk
이외에도 피아노 반주와 엘튼 존 목소리에 힙합 드럼과 랩 피쳐링이 얹어진 탕짜면 같은 곡 Always Love You, 일본 출신 영국 가수 Rina Sawayama와 함께한 발라드 넘버 Chosen Familiy 등은 요즘 같은 날씨에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https://youtu.be/GTDRg5G77x4
이렇듯 엘튼 존의 음악적 도전이 정말 존경할 만한 일인건 분명하지만, 리뷰를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으니.
지난 2017년 어느 국내 페스티벌에서 직접 목도했던 뇌쇄적인 아티스트 이어즈 앤 이어즈의 노래 It's a Sin을 엘튼 존이 함께 부른 6번 트랙 Global Reach Mix 버전을 듣던 중이었다. 도입부는 역시나 피아노 반주로 잔잔하게 시작하더니, 전환부에서 잘못된 만남 인트로와 비슷한 화려한 멜로디가 지나가고, 이윽고 어딘가 익숙한 느낌의 사운드가 들려왔다.
마치 80년대 롤러장에서 나왔을 법한 복고풍의 신스팝 사운드. 20대 초 한창 빠져듣던 류의 음악인데 어떤 가수였더라? 뭐랄까 Two Ton Shoe 같은 이름의 뮤지션인데 뭐였더라? 멜론에 '롤러장'도 검색해보고, 나무위키에 '전자음악'도 검색해보고, 구글에 '7080 electronic music'도 검색해보며 한참 열심히 찾아 결국 궁금해하던 이름을 알아냈다.
바로 Pet Shop Boys.
결국 알아냈다는 기쁨에 답답함이 뻥 뚫리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아까 익숙했던 사운드가 정확히 어떤 곡이었는지 확인하고자 유튜브에 'Pet Shop Boys'를 검색한 순간 나는 다시 한번 깜짝 놀라고 말았다.
https://youtu.be/dRHetRTOD1Q
그렇다. It's a Sin은 원곡이 펫 숍 보이스이고, 이어즈 앤 이어즈가 커버했던 버전을 이번에 엘튼 존이 함께하여 리믹스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엘튼 존 앨범에 들어있는 트랙을 들으며 '이 리믹스 트랙의 사운드가 펫 숍 보이스 음악이랑 비슷한데?'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그 원곡의 원곡이 원래 그냥 펫 숍 보이스 음악이었던 것. 이렇게 돌고돌아 제자리를 찾은 멋쩍지만 기억에 남는 이벤트가 있어서 이 앨범 리뷰를 안 해볼 수 없었다.
무튼 여차저차해서 좋은 앨범을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고, 엘튼 존이라는 분에 대해서도 나름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1947년생, 우리 나이로 75세인데도 이렇게 과감한 음악적 시도를 보여주는 모습에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낸다. 부디 나도 저렇게 멋지게 나이 들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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