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의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내가 기다린 결과와 달랐다. 당황스러웠다. 꽤 당황스러워서 처음엔 기분이 나쁜지 아닌지도 분별이 안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결과를 다시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대로였다. 탈락.
처음엔 생각보다 홀가분했다. 이 일로 한달에 가까운 시간을 고민하고, 준비하고, 마음 졸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결말이 지어졌으니 이제 더 이상 이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 것도 같았다. 더 중요한 것은 어차피 이 일이 벌어지기 전과 똑같은 상태라는 것이다. 원하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전보다 나빠지진 않았다. 어차피 이대로 지낼 운명이었나보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아니, 이 변수에 대해 나름대로 치열하게 예상해봤지만 현실은 그보다 한참 멀었다. 훨씬 더 냉혹했다. 아마 이전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만큼은 절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상했다면 애초에 시작하질 못했겠지. 그러니 이 결과를 피하지 못했다고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내가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렇게 계속 나를 위로해본다.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사실 처음엔 다른 선택지를 더 원했었다. 장점이 매우 크진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이점은 보장되는 선택지. 남들도 당연하게 떠올리는 선택지. 커다란 실패는 하지 않을 선택지. 그렇지만 나는 도전을 했다. 나름대로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도전이었다. 멋지게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게 좌절된 지금, 가지 못했던 길이 자꾸 눈에 밟힌다. 홀가분한 척 해보지만 마음이 무거운 이유다. 미련, 후회, 원망... 이런 것들이 뒤엉켜 가슴 어딘가를 짓누른다.
이렇게 생각해본다. 결말을 아는 영화는 재미가 없다. 반전이 다 알려진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는 관객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리라. 결말을 안다면,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사는게 정말 쉽겠지만.. 과연 그게 진짜 삶일까? 인생을 살다보면 원하지 않는 일,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 최선을 다했지만 운이 나빠 쓰디쓴 실패를 맛보기도 하고 때로는 큰 기대없이 도전한 일에 커다란 성공이 따라오기도 한다. 그게 삶이고 인생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단지 이를 받아들이고 다시 내일을 살아갈 뿐이다. 단순히 살아가는(survive)게 아니라 진짜 삶을 사는(live) 태도는 그런 것이다.
오늘 입에 쓴 초콜렛 하나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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